1968년 고 정주영회장과 지역사회교육운동 발족준비를 하던 운영위원회
1958년 서강대학교 창립 당시
2006년 긍정심리학의 대가 마틴 셀리그만 박사 초청강연회
(연구소활동 브로셔와 캠페인용 카드, 최근에 강의하신 강의 자료집 등 많은 것을 가지고 오셔서 보여주셨다)
현재 우리 한국 사회의 갈등이 뭐 같아요?
이 : 소장님을 모시고 그냥 하루 종일 강의를 들어도 너무 신나고 재밌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90세가 되시도록 정말 정정하게 활동을 하시는 데 특별한 건강 비결이 있을까요. 김 : 바로 남을 도와주고 위해주는 것이 자기를 위하는 길이라는 할머님의 가르침과 또 우리 아버지는 항상 그러셨어요.
“아버지 건강하게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화내지 말고 남을 미워하지 말아야 해”.
“아휴, 아버지 그거 너무 어려워요. 화가 나는데 어떻게 화를 안 내요 그리고 미운 짓만 하는 사람을 어떻게 안 미워해요.”
“니 마음대로 해”
우리 아버지의 답이 너무나 간단하셨어요.
이 : 따님을 완전히 믿으셨군요.
김 : 그렇죠. 니 마음대로 해! 그 선택권이 나에게 있다고 하신거죠. 그런데 이제 이렇게 이 나이가 돼도 꼴 보기 싫고 미운 사람이 있더라고요. 그럴 때마다 꼴 보기 싫고 미워도 내 선택이라고 하셨지! 그런데도 그냥 자꾸 떠오르는 거예요. 미운 짓한 사람 꼴 보기 싫은 사람이 떠올라요. 그러면 즉시 다른 선택을 하는 거죠. 그래, 다른 좋은 생각을 떠올리는 거야. 그래서 뭐 이렇게 공개적으로 이런 말씀을 드려도 될지 모르겠지마는 내가 이제 이게 늙어지면서 많이 외로워지더라고요. 이렇게 가족이 다 떠나고 그러니까 누구를 오랫동안 못 만나면 섭섭하고 막 이래 그러면 이제 나를 섭섭하게 한 사람이 떠오르잖아요. 그러면 떠오르는 거를 신호로 해가지고 그때마다 그를 향한 좋은 기도를 하는 거예요. ‘아 이거는 기도하라’는 신호구나 하면서 기도를 해요.
이 : 그러니까 알아차림을 통하여 긍정심리학에서 얘기하는 생각을 긍정의 상태로 바꾸시니까 그게 건강에 굉장히 도움이 되시는 거군요. 그리고 신체적으로 무슨 운동하시거나 이러는 건 없으세요.
김 : 이제는 먹는 것을 결식하지 않고 과식하지 않아요. 그리고 자기 전과 아침에 깨어나서 간단하게 한 5분이고 10분이고 다리를 올려서 흔들어 줍니다. 이렇게 피가 잘 안 통하고 아래에 피가 잘 안 돌고 그러니까 이렇게 팔 다리 흔들어대는 운동을 자주 하지요. 이제 많이 걷지를 못하니까 가능한 실내 자전거 타는 운동하고 그냥 이렇게 딱 정해놓고 이제 ‘오늘은 하지 말아야겠다가 아니라 오늘도 해야지’ 하면서 하고 있어요. 김인자 소장님은 아침 6시면 카톨릭 미사에 참여한 후 운동을 하고 아침을 먹고 사무실에 출근하신다 한다.
이 : 심리상담연구소에서 만든 포켓용 카드 <행복에 이르는 길>에 말씀하신 절식, 과식의 이야기와 절제 그리고 아침에 거울보고 밝게 세 번 웃기가 있네요.
김 : 그게 말이에요. 어떻게 보면은 바보 같잖아요. 아침에 세수하고 우리 모두 거울 들여다보지 않아요? 거울에 자기 얼굴이 따악 보이면 자기 얼굴을 보고 세 차례 환히 웃어보세요. 기분이 밝아져요. 바로 자신이 행동을 선택했기 때문에 몸 안에서 세라토닌이 생겨요. 그리고 ‘때문에’를 ‘덕분에’로 바꾸는 것입니다.
김 : 지지 정도가 아니야. 세계적인 유명한 대가들을 내가 찾아가서 직접 만나보니까 아 정말 대가야. 근데 한국에 많은 사람들은 그 사람들을 못 만나잖아요. 그러한 얘기를 했더니 뭐 간단하게 그 사람들을 한국에 오게 하면 되지 않소! 하시는거예요. 그런 사람들을 오게 하는데에는 돈이 필요하잖아요. 헌데 경비가 너무 많이 들어서 망설이니까 우리 집 회장은 그냥 해! 하시는 거예요. 처음으로 마틴 셀리그만을 초청해서 연대에서 세미나를 여는데 세계적인 사람을 부르니까 한 8, 900명? 1,000명 가까이 모였어요. 그리고 또 대학원대학교를 한다고 그러다가 같이 하자고 하신 분이 당시에 대학을 줄이고 통폐합을 하던 시절이어서 무서워서 못 하겠다고 포기를 하는 바람에 부지도 마련하고 터를 닦느라 평창동에 400여평의 땅을 팔고 살던 집도 팔고 하였는데 갑자기 중단되는 바람에 그때 굉장한 액수의 돈을 손해 봤거든. 그래서 사람들이 손해 입힌 사람을 고소하라고 막 그랬는데, 고발당한 사람도 법정에 드나들어야 하지만 고발한 사람도 변호사 만나고 법정에 드나들어야 해 하면서 내 팔목을 탁 잡고 “여보 그렇게 하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아”하시는 거예요. 그대로 포기를 했죠. 사실 지금도 코로나19로 연구소 운영이 어려워졌어요. 어려워졌다는 사실은 인식을 하는데, 어떡하지 이러다가 큰일 나겠네 등 이러한 조바심이 전혀 없어요. 어차피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건데 그냥 의미 있는 일 재밌게 하고 좋은 사람들 만나고 그러면 부자다 이렇게 느껴져요.
남편이야기를 하다보니까 정주영 회장님이 떠오르네.. 정회장님은 누가 무슨 질문을 해도 언제든지 호탕하게 답변을 하셔요. 한 번은 정주영회장님이 경제학자들과의 모임에서
“이제 우리나라도 잘 살 수 있다.”
“경제적으로 잘 살려면 재원, 자원이 필요한데 우리나라는 재원도 없고 자원도 없는데 어떻게 잘 살 수가 있는지 그렇게 믿는 근거가 뭐예요?”
“맞아요. 잘 살게 되려면 재원과 자원이 필요한데 우리나라는 재원도 자원도 부족하죠. 부족합니다. 그런데 세계 재원과 자원은 많습니다. 이제는 전 세계의 재원과 자원을 다 함께 쓸 수 있어요. 그것을 활용하는 게 유능한 인재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그 인재가 되십시오.”
사실 그 때 내가 옆에 있었는데, 뭐라고 대답을 하시려나 조금 걱정이 되었는데 이렇게 명쾌하게 답변을 하시는거야.
이 : 남편에 관해 말씀하시다가 자연스럽게 정주영회장님 말씀으로 넘어가시네요. 아마도 두 회장님의 면모가 많이 비슷하신가 봐요.
김 : 우리 회장님(부군)과 정회장님의 호탕함이 많이 비슷합니다. 내게는 존경하는 세 남자가 있어요, 친정 아버지, 내 남편 그리고 정주영회장님이예요.
이 : 정회장님과의 많은 추억이 주마등처럼 지나가시나 봐요. 밤 새 들어도 할 이야기가 넘치실 것 같습니다. 언제 또 한 번 길게 이야기 나눌 기회를 갖기로 하고, 오늘은 마지막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지금 세상은 글로벌화 되었잖아요. 이런 시대에 맞춰서 우리가 가진 재능으로 세상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또 어떠한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지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얘기 좀 해주세요.
김 : 인류는 굉장히 개인적으로 자기 욕심만을 채우려고 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우리가 원하는 것은 몇 천 년을 두고 일관되게 모든 사람은 다 개인의 건강과 공동체의 행복을 위해서 산다는 거예요. 행복은 절대로 혼자 할 수는 없는 겁니다. 이웃하고 함께 함으로써 가능한 거예요. 이웃하고 갈등이 생겼을 때 이웃을 없애는 것이 갈등 해결이라고 생각하는 그러한 분위기에서 갈등을 지혜롭게 활용하면서 같이 함께 손잡고 나아가야하는 것이지요. 우리 이 지역사회교육운동이 그냥 단순하게 학교 중심으로 하는 학부모교육이 아니라 그 지역사회 전체가 커뮤니티를 형성하여 화해하고 협동할 수 있도록 이끈다면 이 운동의 발상지 미국 프린트 시와 같은 멋진 공동체를 만들게 되겠지요.
이 지역사회교육윤동의 시발점이 된 프린트시의 기록영화 를 함께 시청한 이연숙(전 국회의원)선생과 조그만 방에서 오재경 선생님 정준 선생님 그리고 나 이렇게 처음에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서 머리를 맞대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합니다.
내가 노래하는 것은 뭐냐 하면 이렇게 지역사회 전체가 학교가 되어야 하고 배움터라야 합니다. 그래서 각자가 원하는 것이 달라서 갈등이 생겼을 때 그 갈등을 성장의 기회로 활용해서 공동 이익을 추구하는 그러한 사회로 성장해야죠. 이러한 지역사회교육활동이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평화구현에 밑거름이 될 수 있고 우리가 바로 그러한 가치를 일구어내는 역군이 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면 좋겠어요. 이 단체가 이렇듯 평범한 사람들이 아주 순수하고 높은 뜻을 가지고 활동하는 것을 지원해주고 또 이 뜻을 기리며 동참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행운이고 축복이라고 생각해요. 이 좋은 활동에 함께 할 수 있어서 정말로 감사했고 앞으로도 계속 응원하겠습니다.
이 : 예 감사합니다. 우리가 혼자서는 살 수 없고, 또 갈등이라는 것도 이웃이 있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고, 그걸 극복하면서 어떠한 해답도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이웃을 소중히 여기고 그 관계 안에서 소통을 잘하면서 갈등을 발전의 기회로 삼는다면 우리는 나와 내 가족 내 이웃뿐 아니라 그게 퍼져서 사회, 그야말로 좋은 세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귀한 말씀으로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언제고 다시 한 번 소장님을 모시고 1박을 하면서 빙 둘러앉아 두런두런 말씀을 들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해 봅니다. 아프리카 속담에 ‘노인 한 분을 잃으면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역사의 산 증인이라는 뜻이죠. 오늘 그런 시간이 됐다는 생각이 듭니다. 90세의 노교수님을 모시고 그 분의 인생 여정, 철학 등을 들을 수 있었고, 또 한국지역사회교육운동과 관련된 초창기의 여러 말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뵈올 날을 꿈꿔보며 오늘 인터뷰를 마칠까 합니다. 카메라를 보시고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김 : 아무튼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놀라운 것은 다른 기업가들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을 아산 정주영회장님께서는 50여년 전에 우리 사회에 지역사회교육운동의 씨앗을 뿌리신거지요. 지금은 평생학습시대가 되어 정부 주도로 이러한 활동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만 그 당시로는 어느 누구도 생각지도 않던 일이었죠. 이는 대단히 훌륭한 업적이십니다. 우리 한국지역사회교육재단은 故 정주영회장님의 뜻을 받들어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의식의 건강과 더불어 우리 사회가 행복해지도록 다양한 활동을 계획하고 지원함으로서 지역사회를 넘어 세계 평화에 이바지한다는 것에 대한 큰 자부심과 자신감 이런 것을 다지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감사합니다.
이 : 감사합니다. 오늘 장시간 아주 귀한 말씀해 주시고 지역사회교육운동의 대선배님으로 저희에게 좋은 귀감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자리를 빛내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리구요. 건강을 기원하면서 <제 9회 아산지역사회교육상>을 받으신 것을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 1시간 30분가량 인터뷰가 진행되었습니다. 김인자소장님의 수고와 열정을 고스란히 전하고 또한 남기고자 가능한 많이 기록을 하였습니다, 내용에는 왜곡됨이 없이 매끄러운 전달을 위하여 녹취한 내용을 약간 다듬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