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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참사람 – 초록이 엄마 조두리

내가 만난 참사람

초록이 엄마 조두리

  초록이네가 울산 화봉마을로 이사 간 지 6개월 만에 우리 친구들이 초록이네 집을 찾았다. 엄마 봄이와 꼭 닮았지만 눈이 잘 안보이고 진돗개로서는 사실 그 영민함이 조금 떨어지는 초록이는 진돗개 엄마 봄이가 낳은 일곱 마리 새끼 중 한 마리이다. 태어났을 때 보고 이제 보니 어느새 건강한 모습으로 성장해 있었다.

  봄이가 한꺼번에 일곱 마리의 새끼를 낳아 젖이 부족해서 할 수 없이 우유를 먹이게 되었단다. 그런데 누구를 먹였는지 알 수가 없어 조두리씨는 일곱 마리의 강아지들의 배에는 빨, 주, 노, 초, 파, 남, 보 색깔을 칠했다. 그리고는 빨강 – 태양이, 주홍 – 노을이, 노랑 – 나리, 파랑 – 하늘이, 남색 – 새벽이, 예쁜 새 이름을 하나씩 붙여주었다. 그런데 초록과 보라는 그 이름만으로도 너무 이뻐서 그냥 초록이와 보라로 부르기로 했다.

  다른 녀석들은 모두 힘차게 달려와 엄마젖을 빠는데 이 초록이라는 녀석은 눈도 못뜨고 맨 날 엄마젖을 찾지 못해 뒤처져서 먹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동물병원에 데리고 가서 진단을 해보니 의사의 말이 ‘아마도 이 녀석이 문열이 인가봐요’ 하더란다. 그렇게 초록이는 처음으로 엄마뱃속에서 나오다 보니 길을 트느라 힘이 들어 턱관절도 비틀어지고 눈도 잘 안 보이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게 되었다.

  일곱 마리의 새끼들을 모두 분양하기로 약속하면서 사실 가장 튼튼한 하늘이를 키우고 싶었던 조두리씨는 결국 가장 약하고 부족한 초록이를 데리고 살게 되었다. 그렇게 초록이는 부족함 덕분에 너무나 좋은 엄마를 만나 울산의 아름다운 정원을 지키며 살게 되었다.

 초록이 엄마 조두리씨는 글쓰기 독서지도자이다. 워낙 성품이 남에게 뭔가 주기를 좋아하고 자기가 사는 곳을 가꾸기 위해 늘 무언가를 하는 분이었다. 종이접기를 해서 시를 적은 액자를 남몰래 엘리베이터나 아파트 놀이터에 걸어놓기도 하고 특유의 친화력으로 이웃주부들을 규합하여 아파트 화단에 채송화씨를 뿌리기도 했다.

  그런 조두리씨가 신촌의 아파트에 살다가 이웃의 아이들을 위해 작은 도서관을 열기 위해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갔을 때에도 사람들은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대문 옆에는 ‘나무와 새’라는 작은 간판이 붙고, 1층에는 그동안 모아온 수많은 책들이 꽂혀서 이웃아이들과 주무들을 위한 작은 도서관으로 개방되었다. 마당에는 나무아래 모래를 쌓아놓고 아이들이 마음껏 흙장난을 하게 하고, 저마다 스스로 책을 골라 이 책을 왜 골랐는지부터 스토리를 만들기 시작한다. 조두리씨는 아이들에게 뭔가 가르치려 하기보다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할 기회를 주었다. 그는 아이들의 작은 변화를 하나씩 기록해서 부모들에게 전달하고 함께 아이들의 성장을 도와주었다. 초록이도 그 가운데에서 엄마 봄이와 함께 ‘나무와 새’를 지키며 컸다.

  그러던 초록이 엄마가 홍대입구의 소란함을 벗어나기 위해 10년 동안 운영하던 ‘나무와 새’를 접고 그 많은 책들을 도서관에 기증하고는 호젓한 동네로 이사를 갔다. 그곳에서는 야생화에 관심을 갖고 사진도 찍고, 꽃을 키우기 시작했고, 바느질로 소일을 하더니 어느 때에는 커피와 차를 공부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남편의 일터가 있는 울산의 화봉마을로 이사를 간 것이다. 그 사이 초록이 엄마 봄이는 하늘나라로 가고 이제 엄마만큼 성장한 초록이가 조두리씨네 집의 터주대감이 되어 집을 지키고 있었다.

  초록이네 집에는 온통 야생화와 꽃들로 아름다운 정원이 가꾸어져 있다. 화봉마을 사람들도 저마다 집안을 아름답게 가꾸고 있었지만 그렇게 집안에서만 꽃을 키울 뿐이었다. 그러던 마을에 초록이 엄마가 이사를 오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조두리씨는 꽃모종을 사다 길가에 심기 시작했다. 집 옆으로 흐르는 개천 옆에는 코스모스를 나란히 심어 어린 코스모스들이 피어오르기 시작했고, 동네입구에는 자운영꽃을 비롯하여 구절초, 유채, 금낭화, 베고니아. 백일홍, 쑥부쟁이, 산국, 끈끈이 대나무와 양귀비도 심었다.

  사람들이 묻기 시작했다. ‘ 아이고, 누가 캐 가면 어쩔라꼬~’ ‘캐가면 또 심지 뭐~’

  ‘와 집안에 심지 밖에다 심노 ~’ ‘ 내가 심으면 내 땅이지 뭐~’

  조두리씨는 우리 집 울타리를 넘어 동네 전체를 자기 집으로 삼는 사람이었다.

  따르릉 ~ 전화벨이 울리며 이웃집 언니가 주문을 한다. ‘우리 집에 손님 일곱이다… 커피셋에 허브차 넷’ 이웃집 언니들이 전화를 하면 언제라도 바리스타가 되어 향기로운 차와 이쁜 커피잔들이 바구니에 실려 나들이를 나간다.

  ‘배달커피 왔어요’ 하면 ‘치마가 너무 길다’ 하며 깔깔 대소를 하는 이웃들과 어느새 언니 동생이 되어 일곱 부부가 모임을 만들어 아침이면 온 동네가 꽃밭에 물을 주느라 분주하다.

  하룻밤을 묵은 우리도 아름다운 화봉 마을을 구경하기 위해 산책을 나갔다. 집집마다 서로 다른 모습으로 정원을 만들고 담장도 나지막하여 지나가는 동네사람들이 서로 안부를 묻고 인사를 나눈다. 실개천이 흐르는 길가로 투박한 항아리위에 많은 꽃들을 가꾸는 수민이(가명) 어머니를 만났다. ‘ 집이 너무 아름다워서 행복하시겠어요’ 우리의 인사에 그분은 조용히 미소를 띠며 말한다. ‘ 아픈 딸이 있어서 딸에게 꽃을 보여주려고 아파트에서 이곳으로 이사를 왔어요 ’ 거실 안에는 5살 때 교통사고를 당해 15년째 누워있는 수민이가 꼼짝도 못하고 누워서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음주 운전 자동차에 사고를 당한 딸로 인해 수민이네 가족은 아예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는다고 한다.

  수민이의 어머니는 아침에 목욕탕에 가는 일 이외에 15년 동안 외출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다. 그런 아픔을 가진 이웃에게 초록이 엄마는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언니, 내가 동화책이 많이 있는데 수민이에게 와서 동화책을 읽어줘도 될까’

  한 번도 엄마 이외에는 다른 사람과 교류를 하지 않은 수민이에게 초록이 엄마는 따뜻한 천사가 되어 날아왔다. 아마도 몇 개월 뒤 우리는 수민이가 동화책 읽는 소리에 미소를 지을 것을 믿는다. 화봉마을의 책읽어 주는 아줌마 조두리씨는 그렇게 사람들을 자기 집 자그마한 도서관으로 모이게 할 것이다. 산책을 하고 돌아오니 앞집에서 오이를 땄다며 파릇한 오이 세 개가 마루위에 가지런히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 내가 생각하는 참사람이란 : 자신의 내면을 알곡으로 만들어 이를 아낌없이 이웃과 지역사회를 위해 나누고 어디에 살든 그가 가는 곳을 생명력 넘치는 따뜻한 공동체로 만드는 사람.

 

글쓴이 : 김 주 선 ( 이 글은 교보교육재단에서 공모한 제1회 참사람에세이 공모전 대상작품으로 지역사회교육운동을 통해 만난 참사람 조두리선생을 소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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