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같이多가치

어느 새해 만남이 보여준 삶과 학습의 방향

이관춘 대표 논설위원, 연세대 객원교수

    신년하례. 새해 정초에 흔히 듣는 말이다. 한 해가 시작되면 각 기관이나 단체별로 다양한 신년모임이 이루어진다. 시무식을 열고 새해 각오를 밝히는 기업들처럼, 조직의 성격에 따라 그 모임의 내용과 형식은 다를 것이다. 그러나 서로 인사를 나누며 새롭게 마음을 다잡기 위한 모임임에는 분명하다. 그런데 편견이겠지만, 자의(字意)적 의미와는 무관하게 시무식이니 신년하례식이니 하는 한자어는 어쩐지 정이 가질 않는다. 마치 부동자세로 군부대 정문에 서 있는 낯선 위병과 신년 인사를 하는듯한 불편한 느낌이다.

    지난 주, 이런 느낌과는 전혀 다른 신년모임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한국지역사회교육재단의 「시와 음악이 있는 새해 만남」이었다. 흔히 기업이나 단체의 시무식에는 예술 공연이 곁들여지기도 한다. 조직의 목적과는 무관하게, 때로는 생뚱맞게, 그저 새해 축하나 흥을 돋우기 위한 프로그램이란 인식이 짙다. 허나 「시와 음악이 있는 새해만남」은 이런 기존의 인식을 말없이 바꾸어 놓았다. 웃음꽃이 피는 화기애애한 프로그램 속에는, 새해 ‘지역사회교육운동’이란 재단의 사회적 미션이 추구해야 할 방향이 드러나지 않게, 그러나 정교하게 제시되어 있었다.

와 음악이 있는 새해만남

    그 사회적 미션은 교육을 통해 ‘지금보다 더 크고 위대한(good to great) 공동체세상을 일군다.’는 최운실 이사장의 환영인사에 녹아 있었다. 이에 대한 구체적 실천사례로 소개된 터득골, 시니어체인지연구회, 사랑나무야학 등은 교육이 지향하는 ‘위대한 공동체’는 추상적이며 이상적인 수식어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실천할 수 있고 또 해야 할 교육의 방향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렇다면 새해 그 교육의 방향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재단의 핵심가치로 언급되고 있는 ‘사람다움’이다. 사람다움이란 각자의 자기실현과 시민의식, 협력 및 공존의 가치를 포함하는 평생교육의 이념이다. 20세기 초 미국의 린드만이나 영국의 익슬리를 필두로 하는 성인교육의 선각자들에서부터 지금의 유네스코 평생교육에 이르기까지 한 목소리를 내는 교육과 학습의 목적이기도 하다.

    주목할 점은 사람다움의 교육을 위해 유네스코[Delors Report]가 강조하는 것이 바로 시(詩) 교육, 음악과 예술 교육이란 점이다. 하이데거의 철학대로, 인간다움은 겉으로 드러난 존재자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내면의 ‘존재’를 보고 성찰하는 교육을 통해서만 가능한데, 그 존재를 우리에게 드러내는 것(Aaletheia)이 바로 시와 예술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평생교육철학적 관점에서 볼 때, 시(1부)와 음악(2부)의 시간으로 구성된 ‘새해만남’의 프로그램은 인상적으로 돋보였다. 특히 필자의 관심을 끈 것은 시의 내용과 음악[악기]의 선정이었다. 재단의 이념과 평생교육의 본질에 대한 리더의 철학과 구성원들의 프로그램 설계 역량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1부의 프로그램은 시, 「새해 새 마음」 (한상완 교수·시인)으로 문을 열었다. 시인의 ‘새해 새 마음’은 의례적인 새해 인사나 덕담이 아니라 조용한 자기성찰이었다. 인간다운 공동체세상을 위협하는 코로나19, 그 역병을 자초한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한 성찰이다. 시는 코로나19는 “인류가 오만하게 지구파괴를 일삼은 결과”라고 말한다. 시인은 그 “인류형벌”을 극복하는 방법을 지역사회교육운동에서 찾는다.

 

    “새해엔 모든 것을 아끼자/ 우리들끼리 더 아끼고 사랑하자/ 창조주가 값없이 인류에게 선물하신/ 소중하고 귀한 지구를 더 아끼고 보살피자.”

 

    시인의 시선은 서로 다른 익명의 ‘나’들을 넘어 ‘우리 공동체’를 향한다. “우린 잠시 우리에게 주어진 생애를/ 지구를 빌려 살다가지만/ 우리 후세를 위해서라도 낭비해서도/ 어질러 놓아도/ 파괴해서도 아니 되니/ 우리 새해엔 모든 것을 아끼고 사랑하자.” 시의 행간의 의미를 보면, 나를 넘어 우리와 미래세대를 위한 이 모든 행동은 자기희생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실현의 삶이자 평생교육의 과제이다. 또한 유네스코가 사람다움의 교육으로 제시한 ‘더불어 살기 위한 학습’의 이념이기도 하다.

밤벨, 혼자서는 무기력한 아름다운 악기

    2부 프로그램인 ‘밤벨로 하나 되는 시간’(진행 김창수 교수)은 결코 잊혀지지 않을 즐거움과 감동의 학습이었다. 평이해 보이는 전통 악기 하나로 삶과 학습의 본질을 그토록 흥겹게 체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 평생학습의 장이기도 했다. 김창수 한국밤벨연구소 소장에 의하면, “밤벨은 앙클룽(Angklung)이라는 인도네시아 전통악기인데 각각의 악기가 한 개의 음만 낼 수 있기 때문에 여럿이 함께 연주해야 비로소 하나의 노래를 만들 수가 있다.”

    대나무의 주 생산국인 인도네시아답게 검은 대나무를 건조시켜 만든 악기로 보인다. 대나무를 가르고 그 사이에 다시 막대기를 넣었는데 흔들면 대나무 특유의 청아한 소리가 난다. 외형이나 색깔로는 차이를 전혀 알 수 없는 악기지만 각각의 악기는 고유하고 독특한 한 개의 음만 낸다는 특징이자 한계가 있다. 하지만 악기의 그런 독특한 한계가 여럿이 함께 연주할 때는 상대적으로 쉽게 노래를 만들 수 있게 하는 장점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참가자들 모두 즉석에서의 연습을 통해 오케스트라의 일원이 되는 흥겨운 체험을 할 수 있었다.

    밤벨 혹은 앙클룽에서 타자와의 연결성을 숙명으로 하는 인간 실존의 모습을 보게 된다. 지역사회교육운동, 평생교육은 인간 실존의 운명적인 연결성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한다. 인간다운 공동체를 실현한다는 교육의 목표는 인간이 공동존재(Mitsein)라는 인간본성에 대한 철저한 교육을 통해서만 구현될 수 있다. 따라서 각자도생이란 말은 개념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인간의 본성과는 명백히 배치되는 말이다. 존 듀이가 강조한 대로 나와 너는 개념상 구분이지 사실적 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혼자서는 한 개의 음만 낼 수 있기에” 노래를 만들 수 없으며, 반드시 여럿이 함께 연주해야 만하는 운명은 밤벨만이 아니다. 혼자서는 소리 나는 대나무 정도에 불과하지만 여럿을 함께 모으면 신명나는 오케스트라를 만들 수 있는 것도 밤벨만이 아니다. 밤벨은 너와 나, 그리고 우리 공동체의 또 다른 이름이다.

    밤벨을 이리저리 흔들며 청아한 소리를 듣고, 즉석 오케스트라의 일원이 된 것에 뿌뜻해 하는 참가자들의 웃음 띤 얼굴에서, 인간이 무엇이고 교육이 지향해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즐거움과 학습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면서, 새해 삶과 학습의 궁극적 지향이 무엇인지를 성찰하게 하는 ‘새해 만남’에서 교육의 과제와 희망을 함께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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